두 영어교육요원의 하루.

인수위, 이번엔 "영어 잘하면 군대도 안간다"?

1.영어교육요원 A

새벽 5시에 자취방에서 일어나서 간단히 세면을 하고 황급히 집을 나선다. 학생들이 7시 30분까지 등교하기 때문에 난 6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된다. 지하철에서 내린 뒤 달려서 먼저 학교에 도착한 뒤 수위아저씨와 인사하고, 교무실에서 선생들 책상을 닦는다. 아니, 왜 내가? 일찍 도착할 필요도 원래는 없을텐데 청소까지 하라고? 라고 처음엔 생각했지만 교감선생의 간곡한 설득("꼬우면 군대가든가.")에 힘입어 솔선수범하기로 했다. 닦아낸 후 아무 것도 없는 책상에 앉아 졸고있으면 교무회의가 시작된다. 물론 내가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상관 없지만, 이 시간에 자고 있으면 뭐가 꼬운지 선생들이 갈궈대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다. 학생들이 보인다. 영어교육요원 또한 공익근무요원처럼 유니폼이 따로 있고, 간지가 안나는 것도 똑같다. 키득거리며 웃는 학생들을 보기 조금 짜증이 난다. 그래서 교무실로 들어가 녹차를 타 마신다.
아침 보충수업시간이 된다. 이 학교는 이 시간에 영어듣기를 한다. 난 이 때 긴장해서 복도 한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드르륵. "야!" 1반에서 박선생이 우렁찬 목소리로 날 부른다. 아, 씨발. 하필 1반이야. 난 열심히 달려서 1반에 도착한다. 박선생은 내게 문장 하나를 번역시킨다. 난 그 문장을 영어로 학생들에게 외쳐줬고, 박선생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말한다. "넌 영어요원이라는 애가 발음이 왜 그렇냐? 어휴. 가봐." 십라.
쉬는 시간을 빼면 대게 이런 식이다. 물론 교무실 책상에서 대기하다가 내선 전화가 오면 가서 '도움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학교는 반마다 내선 전화가 설치되어있지 않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선생들이 지랄지랄을 해대서 난 복도에서 대기하게 된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30분만에 먹고 교무실 책상에 와보니, 학생들 작문 숙제가 쌓여있다. 선생 개새끼들. 어찌어찌 벼락치기로 교사 영어검정은 통과한 모양인데, 역시 실력이 모자라서 학생을 채점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영어 쳐다보기가 귀찮은 거거나. 그래도 오늘은 세 반 분량, 백 오십장밖에 안된다. 내용도 다 간단한 편이고. 슥슥 채점해나갔다. 여기 와서 좋은게 딱 하나 있다면 영어실력이 좀 올라갔다는 거? 선생들 영어실력도 올라갔을테지만 왠지 티가 안난다. 근데 너무 여유있게 하다보니 점심시간 종이 울렸는데 4반 김선생 것이 아직 덜 됐다. 김선생이 와서 슥 둘러보더니 아직 다 안끝났다고 하자 뒤통수를 때린다. "부지런해야지, 새꺄. 이새낀 군대도 안간새끼가 맨날 게을러. 니가 군대 가봐 새꺄." 입에 걸레를 물었나, 선생새끼가.
방과후에는 선생들의 잔업을 돕는다. 딱히 추가 수당이 나오는건 아니지만, 도와주지 않으면 다음날부터 하루가 편치 못하다. 맨날 갈굼당하고. 군대 얘기나 쳐 하면서... 상사도 아닌 것들이. 뭐, 그리고 이렇게 하면 저녁은 사준다. 짜장면같은게 대부분이지만, 저녁값 굳는게 어디야. 안그래도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데. 잽싸게 저녁을 먹고, 근처 호프집으로 알바를 나간다. 가서 가끔 학교에서 보던 학생들을 보기도 하는데, 아니, 뭐, 괜찮겠지. 내 자식도 아니고.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서 푹 쓰러진다.

2.영어교육요원 B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챙겨먹고 9시에 출근했다. 이 학교는 이 시간에 오면 차 댈 곳이 모자라서 문제다. 교무실 책상에 앉아있는데, 아무도 날 찾지 않기에 집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꺼내 웹서핑을 잠깐 했다. 어? 아버지께서 의정활동 하시다 잠깐 조신 모양인데, 그게 또 사진으로 찍혔다. [국회에서 조는 국회의원]. 집에 가서 아버지 보약이라도 알아봐야겠군. 아무도 날 찾지 않은 채 점심시간이 되었다. 여기 와서는 맨날 놀아서, 영어 실력이 더 떨어지는 느낌이네. 다들 날 슬슬 피하고 무서워하는 거 같은데, ... 기분 탓이겠지. 선생님들이 다들 영어를 잘해서 나같은 영어교육요원의 보조는 필요 없는게 아닐까?
난 교장에게 가서 조퇴해야겠다고 말했다. 왠지 할 일도 없고, 여기 있고 싶지가 않네. 교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해주었고, 조만간 집에 찾아뵐테니 아버지께 잘 좀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난 아버지께서 저번에 가져온 양주는 맘에 안들어하셨으니, 술 말고 다른게 좋을 거라고 대답해주고는 교장실을 나왔다.
밥먹고 뭘 한다. 쇼핑이나 다녀올까? 저번에 주문한 게 도착했다고 전화도 왔고.



by 개념없음 | 2008/01/28 15:5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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